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제18장 광종의 뒷이야기 1편

by Kaiser0619 2023. 4. 11.
반응형

- 중원의 혼란기 

 한편 후주(後周) 3 황제인 시종훈(柴宗訓) 어린 나이로 인해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아마 후주의 대리평사(大理評使) 쌍기(雙冀) 아버지인 쌍철이 고려(高麗) 망명해서 고려의 신하가 때다. 그리고 세종(世宗) 곽시영(郭柴榮) 부장인 조광윤(趙匡胤) 장군(將軍)들의 추대로 인해 () 건국한다. 

 이때부터 고려와 송의 공식적인 무역관계와 정치적 관계를 시행한다.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고려의 무역이 활성화가 되었으며 개경(開京, 현재 경기도 개성)에서 30 근처에 벽란도(碧瀾渡, 경기도 예성강 하구)에서 활발한 무역을 하였으며, 이때부터 국제적인 무역항으로 완전히 자리잡았다자리 잡았다.

 

- 생애 후반 

 왕소(王昭) 홍수가 나자 궁궐수호와 복원을 목적으로 수영도감(修營都監) 설치하고 정광(正匡) 왕육(王育) 집을 이궁(離宮)으로 삼고 거처를 옮긴다.

 그리고 왕소는 국방에 신경써서 당시 서북계(西北界) 동북계(東北界) 많은 곳에서 축성(築城) 한다. 서북면에는 장청(長靑), 위화(威化), 무주(撫州), 안삭(安朔), 습홀(濕忽), 송성(松城), 낙릉(樂陵), 운주(雲州), 신도(信都), 안융(安戎) 지방에 축성하였다. 지역은 현재 평안남도(平安南道) 평안북도(平安北道) 지역에 축성을 것이다. 동북면에는 장평(長平), 박평(博平), 고주(高州), 화주(和州) 축성한다. 지역은 현재 함경남도(咸鏡南道) 지방에 축성한 것이다. 

 그는 965년에 첫째아들 왕주() 황태자로 책봉하고 장생전에서 흥겨운 잔치를 배풀었다. 이 왕주는 훗날의 고려 제5대 황제, 경종(景宗)으로 아버지의 잔인한 모습을 봐서 그런 것인지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공포감에 사로잡혀서 자신의 뜻을 외부에 표출하지 않고 조용히 지냈다.  

 

- 최후

 그리고 975 여름 왕소는 병환이 나서 몸져누웠고, 황궁에서 붕어한다. 묘호(廟號) 광종(光宗)이오 시호는 대성(大成)이다. 그리고 능은 현릉(憲陵)이다.

 

- 광종(光宗)의 평가, 긍정적인 편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 의하면 익제(益齋) 이재현(李齊賢)은 광종을 평가하기를

 

“과거(科擧)를 설치하여 사대부(士大夫)들을 뽑은 일들은, 광종폐하께서 본래 문(文)이 전아함을 가지고 풍속을 변화시키려 했던 뜻을 보았음이 있고서 쌍기(雙冀) 역시 그 뜻을 받들어 따라서 그 아름다움을 이루었으니, 도움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有以見光宗之雅 有用文化俗之意 而冀亦將順 以成其美 不可謂無補也)라고 평했다. 

 

 광종의 과감한 개혁정책은 호족(豪族) 세력을 약화시키고 왕권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과거제도를 통하여 신진세력들이 대거 등장함으로써 고려조정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으며, 문화적으로도 중원의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여서 독자적인 발전을 이뤄냈다. 

 여기서 혜종(惠宗)과 정종(定宗)의 차이점을 볼 수가 있다. 혜종은 당시 태조(太祖)의 충신이자 군부의 실력자인 박술희(朴述熙)와 정종은 태조의 사촌동생이자 서경(西京)의 실력자인 왕식렴(王式廉)이란 강력한 세력기반에 의존하여 정치를 이끌었다면 광종은 독자적인 세력기반으로 왕권을 확보하는데 힘썼으며, 그리고 권신(權臣)들과 부호(富豪)들의 세력을 완벽하게 제압하기 위해 근친혼(近親婚)을 장려하고 외척들의 폐를 없애려 하였다. 

 아마 고려 초기의 황제들 중에 왕권강화를 위하여 가장 끈기가 있고 전략적으로 노력하며 큰 성과를 거둔 대표적인 황제라고 볼 수가 있을 것이다.

 

 광종이 과거제도를 도입을 하여 정착을 시켜가지고 대한민국 역사상 실력에 따른 인재등용의 길을 확립했다는 것이다. 이 과거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들이 있었다. 이전 통일왕조인 신라시대(新羅時代)에도 신라 말기의 유학자인 최치원(崔致遠)등 육두품(六頭品) 관료들이 학문을 바탕으로 정계에 진출하여 많은 업적을 남겼고, 신라(新羅)의 31대 국왕인 신문왕(神文王)이 국학(國學)을 설립하고 열조(烈祖) 원성왕(元聖王)이 독서삼품과(讀書三品科)를 설치하여 유학을 다져 놓았기에 이러한 노력에 과거제도가 빛을 바랄 수 있었을 것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