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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장 위험한 사랑 2편 왕송(王誦)... 그는 경종(景宗) 왕주(王伷)의 아들이자 고려(高麗) 제7대 황제인 목종(穆宗)이다. 왕송은 어렸을 때 고려 제6대 황제인 성종(成宗) 왕치(王治)를 따라 황궁에서 살게 된다. 그리고 그의 나이 10살이 되던 해에 삼촌을 따라 서경(西京, 지금의 평양)에 행차한다. 왕치는 서경의 정궁(正宮)인 장락궁(長樂宮)에 당도한 뒤 자신의 조카인 왕송에게 본인의 봉호였던 개령공(開寧公)을 물어줘 사실상 황태자(皇太子) 책봉을 하였다. 왕송은 17살에 성종을 뒤이어 고려의 황제로 올랐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주 비극의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지... - 허수아비 왕송은 즉위초반 제법 의욕적인 모습으로 정사를 돌보려고 하였으나, 어머니의 천추태후(天秋太后)가 섭정(攝政)을 맡고 어머니의 정인인 동주(.. 2023. 5. 4.
제26장 위험한 사랑 1편 황주의 아녀자와 동주의 승려가 만났다. 이 두 사람은 절대로 만나서는 안 되는 사람이다. 허나 이 둘은 금기의 법칙을 깨고 서로 사통을 하게 된 것이다. 황주(黃州) 황보씨의 둘째 손녀와 동주(洞州) 김 씨의 도련님이 있었는데, 그 여인은 훗날 목종(穆宗) 왕송(王誦)의 어머니이자 경종(景宗) 왕주(王伷)의 세번째 황후인 헌애황후(獻哀皇后)다. 그리고 그 남자는 헌애황후의 정인이자 고려초기 최고의 권신(權臣) 김치양(金致陽)다. 헌애황후는 태조(太祖) 왕건(王建)의 아들인 대종(戴宗) 왕욱(王旭)과 선의황후(宣義王后) 유씨의 딸로 태어났다. 그리고 성종(成宗) 왕치(王治)의 누이동생이며 현종(顯宗) 왕순(王詢)의 모후 헌정황후(獻貞王后)의 언니다. - 황후의 인생 고려의 제5대 황제인 경종이 즉위한 후,.. 2023. 5. 3.
제25장 제1차 여요전쟁 3편 - 세기의 회담 “고려라는 나라는 신라(新羅)의 땅에서 일어났으니, 고구려의 땅은 우리의 소유인데도 너희들이 침범하여 갉아먹고 있다. 또 우리와 더불어 영토를 맞대고 있으면서 바다를 건너 중원의 송(宋)을 섬기고 있으니, 우리 요나라가 대국(大國)이기에 토벌을 하러 온 것이다. 이제 영토를 나누어 조빙(朝聘)의 예를 취한다면 무사할 수 있을 것이다.” - 동경유수(東京留守) 소손녕 - “그렇지 않소. 우리 고려(高麗)는 고구려(高句麗)를 계승한 나라다. 그래서 국호도 고려라고 하고 서경(西京, 지금의 평양)에 도읍을 정한 것이다. 그리고 그대가 말한 대로 만약 토지의 경계를 논하고자 한다면, 요(遼)나라의 동경(東京)도 우리 고려의 영역인데 어찌 그대가 침식했다 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그대들이 우리나.. 2023. 5. 2.
제24장 1차 여요전쟁 2편 - 서희라는 사람 993년 요(遼)나라의 동경유수(東京留守) 소손녕(蕭遜寧)이 8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高麗)를 침공한다. 이때 서희(徐熙)는 내사시랑(內史侍郞)에 관직에서 고려의 황제인 왕치(王治)의 명을 받고 중군사(中軍士)라는 관직에 임명받아 겸직한 채로 대군을 이끌며 북방으로 간다. 소손녕은 군대를 이끌고 봉산군(蓬山郡, 현재 평안북도 선천군)에 주둔하고 있는 고려군을 격파하고 고려조정에 항복하라는 서신으로 협박을 하였는데, 당시 재상(宰相)들은 항복하자는 의견으로 모았다. 그러나 이제와서 이야기를 하자면 80만 대군은 사실이 아닌 걸로 본다. 당시 소손녕의 관직은 요동성(遼東城)과 그 일대를 관리하는 동경유수(東京留守)라는 관직이다. 헌데 소손녕 휘하에서 움직일 수 있는 군대는 6만 명을 넘기.. 2023.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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